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과거 제도 (문단 편집) ==== 문과 ==== 말 그대로 문관을 뽑는 시험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유교 지식인으로서 능력을 시험하고 성균관 입학 자격을 부여하는 생원시와 진사시, 즉 소과는 문과에 해당되지 않는다. 경국대전에 따르면 문과는 문관 관료 선발 시험인 대과만을 지칭하였기 때문, 하지만 대체로 문과를 치르는 사람이 소과를 치르는 경우가 대부분이기에 여기에서 함께 묶어서 설명한다. 문과 대과에는 3년마다 치르는 정기시인 식년시와, 비정기시인 증광시, 별시, 알성시 등이 있었다. 문과는 초시, 복시, 전시 순으로 초시에서 각 도의 인구 비례를 고려하여 240명(성균관 50명, 한성시 40명, 향시 150명)을 1차로 선발하고, 복시에서 그 중 33인을 선발하였고, 전시에선 등수를 결정해서 관직의 품계를 결정하였다. 이론적으론 양인 이상이면 응시가 가능하였으나, 양인은 대체로 농사를 지었기에 과거에 열중할 자금이 부족했다. 그렇기에 대체로 부유한 양인 혹은 양반이 응시하는 경우가 많았다. 사실 조선시대에는 서책이 매우 귀중한 자산인데다 매우 비쌌다. 관에서 편찬해서 민간으로 가는 경우가 많았던데다, 현대처럼 자동화된 시설이 적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책을 구하려면 관에 인맥이 있거나, 아니면 민간에서 비싸게 주고 사거나, 필사를 해야 했는데 어느 쪽이든 돈이나 시간 등이 많이 소모되었기에 부유한 양인 혹은 양반이 아니고서는 응시할 만한 조건을 갖추기 어려웠다. ||<-5> '''[[조선]]의 과거 제도''' || || '''{{{+1 소과}}}''' || 초시 || 복시 || || ||<-4>소과 복시 합격자 '''200'''명은 [[성균관]] 입학 자격 부여|| || '''{{{+1 대과}}}''' || 초시 || 복시 || 전시 || ||<-4>대과 초시: 성균관 유생으로 300일이상 출석한 자는 '''관시''' 응시 자격 부여(초시 합격 정원 240명 중 50명 배정), 소과 비합격자나 자격 미달 유생 등은 '''한성부시''' 및 '''향시'''에 응시(나머지 190명 한성부 및 각 도별 할당)[br]대과 복시: 합격자 '''33'''명 {{{+1 '''[[관직]] [[등용문|등용]]가능'''}}}[br]대과 전시: 대과 복시 합격자 33명의 등수 결정|| [Include(틀:문서 가져옴, this=문단, title=문과, version=656)]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